투구꽃
내 안에 핀 꽃 2007/10/27 00:01 콩나물대제국<투구꽃>
<가야 철제투구>
이름을 몰라도 장군의 기개가 느껴집니다.
갑옷을 차려입고 말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호령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고구려 병사의 투구에서는 견고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신라의 투구에서는 화려함이, 백제의 투구에서는 투박함을 배어있습니다.
삼국의 투구도 물론 투구꽃의 모습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투구꽃같다고 느낀 투구는 가야의 철제투구였습니다.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출토된 가야 투구의 전체적인 윤곽이 마치 투구꽃을 보는 듯 합니다.
투구꽃의 다른 이름으로는 '초오[草烏]'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풀까마귀'가 되겠지요?
투구의 모양이 마치 까마귀의 머리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듣고 보니 까마귀머리같기도 하지요?
까마귀가 못생겼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투구가 까마귀보다는 한결 맘에 듭니다.
<투구 : 출처-네이버>
또 비슷 비슷하게 생겨서 구별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 중 그래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투구꽃'과 '그늘돌쩌귀'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잎이나 꽃모양으로 정확하게 구별해내기가 어렵답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지요.
꽃을 보지말고 꽃이 지고 난 뒤의 씨방을 보고 구별하면 된답니다.
골돌을 보면 되는데 투구꽃은 3개 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꽃이 지고나면 씨가 들어있는 열매가 생기는데 여러 개의 씨방으로 생기는 열매를 '골돌과'라고 합니다.
여기서 '과'는 '열매 과[果]'입니다.
골돌과 [??果]
[명사]<식물> 열과(裂 果)의 하나. 여러 개의 씨방으로 이루어졌으며, 익으면 벌어진다. 작약의 열매, 바꽃의 열매 따위가 이에 속한다. ≒골돌(??)·분과(分果).
<그늘돌쩌귀>
그늘은 알겠고, 돌쩌귀는 또 무엇일까요?
돌쩌귀
[명사]<건설>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 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 맞추어 꽂는다. ≒문돌쩌귀.
<돌쩌귀>
그렇지만 투구꽃의 모양은 위경첩과 아래경첩을 끼워놓은 모양과 더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늘돌쩌귀>
투구꽃은 숲속 그늘진 곳에서 주로 서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늘돌쩌귀란 이름이 얻어진 이유이기도 하구요.
투구꽃과 구별하려면 골돌의 씨방이 몇 개인가 세어보면 됩니다.
몇개죠? 네~ 다섯개입니다.
구별하긴 어렵지 않겠지요?
꽃이 막 피어날 땐 골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찾아보면 조금 일찍 핀 것도 있고,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기 때문에 골돌과 같이 있는 그늘돌쩌귀와 투구꽃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랍니다.
이제 '투구꽃'과 '그늘돌쩌귀'는 구별할 수 있겠지요?
네, 구별할 수 있습니다. ^^
어쩌면 다른 곳에서 '투구꽃'과 '그늘돌쩌귀'를
본다면 어렵겠지만 여기에서는 구별 가능.
콩나물님 방에 있는 풀과 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도 되겠네요.
^*^
야생화 전문가들이 정말 많답니다.
전 아마추어, 취미...여하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로만 듣던 투구꽃, 처음 보는데 투구에 가까워 보이네요.
초오보다야 백번 나은 이름이지요. 이는 문자속이나 밝히는 양반님네에
비기면 민중들이 훨씬 직관적이고 건강하다는 뜻일 테고.
그늘돌쩌귀는 얼른 보니 무슨 새 머리 부분처럼 생각되네요. 부리를 길게 내민….
돌쩌귀 그림 구경 잘 했습니다. 아이들한테 저걸 설명하려면
현대식 경첩을 가지고 해야 한답니다. ^^
그늘돌쩌귀와 투구꽃이 피는 시기가 비슷한것 같습니다.
그늘돌쩌귀가 투구꽃보다 더 밝은 느낌이고, 부리도 훨씬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깊은 맛은 투구꽃에서 더 느낄 수 있었답니다.
정말 친절한 꽃선생님이십니다. ^.^
꽃 공부하다가 국사 공부까지~
고령에 있는 가야의 왕릉이
경주의 왕릉만큼 크기가 웅장합니다.
투구도 잘 만들고, 부강한 나라였지싶어요.
에효...국사공부까지요?
오히려 도루피님이 역사공부시켜주시네요.
가야의 왕릉이 '고령'에 있었군요.
꼭 들러봐야겠습니다.
살짝 도루피님도 생각나겠지요?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허황옥 황후의 능은
김해에 있습니다.
고령에 있는 건 어느 가야죠?^^
찬찬하고 친절한 꽃 설명에
꽃눈 어두운 저도 환하게 눈 뜨고 갑니다.^^
가야가 여러 부족으로 되었단 이야기는 들었었지요.
금관가야가 제일 컸다고 하지요?
김해에 있었군요. 김수로왕은 그럼 김해 김씨였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