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현호색, 할미꽃, 제비꿀, 미나리아재비

들현호색...

남산제비꽃이라고 남산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들현호색이라고 들에판 피라는 법은 없다.
내가 만난 들현호색은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보통의 현호색은 보라색 계열 색을 띠고 있는데, 들현호색은 아주 진한 붉은색을 가졌다.

들기름의 들자가 생각사너인지 들현호색을 보는 순간 난 고소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어려서부터 비빔밥을 좋아했는데 보통은 참기름을 넣고 비비지만 없던 시절이어서 온갖 나물을 썰어 넣고 들기름 한방울에 고추장을 넣어 비빈 비빔밥이 고작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바쁜 농사일에 따로 밥 차릴 시간이 없었을터이지만 그래도 그때 그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할미꽃...

아직도 쑥스러운게 남아 있나보다.
할미꽃 연인의 작은 속삭임이 궁금해 귀를 귀울여보지만 들릴 듯 말듯 봄바람소리에 묻혀버린다.
오늘의 약속이 파뿌리되도록 영원이 지켜지길 바래본다.

흐르는 시간은 아무도 잡을 수가 없나보다.
어느새 벌써 파뿌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떡두꺼비같은 아들 둘을 두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것 같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 시절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란 가족계획 구호가 생각난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환갑이 되어도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다.
그래서 그런지 환갑잔치를 잘 하지 않는 추세인데, 아직 제비꽃 나라에서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환갑잔치를 거창하게 치르고 있다.
동네 제비꽃 아저씨들도 흥이 나서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여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제비꿀...

환갑잔치에 기생이 빠지면 되겠는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제비꿀이 한껏 목청높여 흥을 돋구고 있다.
제비꿀은 양지의 풀밭에서 자라는데, 다른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는 기생식물이다.

미나리아재비...

미나리에게 아저씨가 있는지 오늘 알았습니다.
세상에~ 미나리에게 이렇게 수려한 용모에 키도 훤칠한 아저씨가 있어다니 믿어지지간 않습니다.
아마도 삼촌을 지나 오촌이나 칠촌쯤 되는 아저씨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나리아저씨가 한잔 거나하게 하셨나봅니다.
기생의 노래소리에 몸을 맡기고 하늘 하늘 여유로운 손짓을 하며 춤을 추고 있군요.
춤사위가 보통이 아닌 것이 풍류도 알고, 한두번 놀아본 솜씨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갑자기 사교댄스라도 미리 배워둬야할 것 같은 위기감이 밀려옵니다.